꿈과 마약
최근에 꿈이 마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룰 수 없는 꿈에 빠져 사는 삶이 마약에 빠져 사는 삶처럼 삶을 망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마 전 홍대를 지나다가 라이브 카페에서 나이가 40-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가수가 노래 부르는 걸 들었는데, 노래를 대단히 잘 불러서 놀라면서도, 현실적으로 노래를 불러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기는 어려운데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듣는 사람도 별로 없는 그 가게에서 노래 부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스스로는 가수가 꿈이었을테니,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 3자가 보기에 그것은 매우 불안정한 삶이고 어떤 면에서 보면 그 꿈이 그 사람을 망치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꿈이 마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욱 강화되었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한 가지 재미 사실은 매우 많은 문화권에서 잠을 잘 때 꾸는 꿈과 내가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꿈에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오랜 시간 사람들이 잠을 잘 때 꾸는 꿈과 미래의 꿈이 어떠한 관계를 갖는다는 직관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의미를 좀 더 확장해 보면, 앞서 말한 마약과 같은 미래의 꿈은 잠을 잘 때의 꿈과도 어떤 관계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마약을 ‘깨어 있는 꿈’에 비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약에 빠진 상태가 마치 잠을 잘 때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인데, 이 점에서 보면 꿈은 실제로 마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내 이야기가 너무 억지 같다고 느껴진다면 조금만 더 참아 보길 바란다.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깨어 있는 꿈
우리는 모두 자면서 꿈을 꾼 적이 있기 때문에, 꿈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특성을 모두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꿈에서 시공간 개념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꿈을 꾸는 와중에 갑자기 시간이 바뀌거나 갑자기 장소나 인물이 바뀌는 등의 경험을 말한다. 분명히 친구와 있던 내가 갑자기 하늘에 떠 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과 살아 있는 상태로 만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마약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마약을 할 때도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체험담 중에 마약을 한 후에 별다른 변화를 못 느꼈는데, 거실에 친구들이 와 있길래 즐겁게 얘기를 했다가 잠시 나갔다 들어왔더니 친구들이 사라져 있길래 이상하다 했는데, 애초에 친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워했던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꿈에서 체험하는 경험과 매우 유사한데, 다만 우리가 깨어 있는 상태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마약을 깨어 있는 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예측 기계
전체 이야기 이해하려면 결국 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의 뇌는 일종의 예측 기계라고 할 수 있다(물론 뇌는 우리 몸 전체를 제어하고 자원을 관리하는 등 상당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여기서는 생각 부분에만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우리 뇌는 감각 기관(빛, 소리, 냄새, 질감 등)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하고 계산해서 현재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뇌에서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다음 상태를 예측하고, 그 예측이 현재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와 일치하는지를 판단해서 일치하면 예측을 그대로 사용하고, 틀렸으면 예측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시각 시스템에 대한 내용 참조).
매 순간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수 많은 정보를 통합해서 판단을 수행하면 매우 느리기 때문에 야생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렵다. 포식자와 피식자를 구별하는데 시간을 다 쓰고 있으면 굶어 죽든지 잡아 먹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예측 모형이 감각기관의 실제 정보와 무관하게 먼저 예측을 수행한 후에,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답(groundtruth)와 비교하여 예측을 보정하는 식으로 처리하면 훨씬 빠르게 예측하고 행동을 할 수 있다. 만일 예측이 틀렸다면, 정답을 기반으로 현재 모형을 개선할 수 있고 그러면 이후에 다시 개선된 모형을 바탕으로 보다 정확한 예측을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을 학습(또는 훈련)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흥미롭게도 (구현 방식은 다르지만) 현대의 AI 모델을 학습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다만 인간의 뇌가 AI와 차이를 갖는 부분은 AI는 단일 예측 모델이지만, 인간의 뇌는 여러 예측 모형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뇌는 각 예측 모형을 병렬 처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 궁금증이 드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우리의 뇌가 동시에 여러 예측 모형을 처리하고 있다면, 우리는 왜 깨어 있는 동안 하나의 현실만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뇌가 여러 예측 모형 중 하나를 선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정답부터 말하면 그렇다.
무대 위의 Spotlight
현대의 의식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여러 예측 모형을 병렬적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 특정 모형이 이른바 ‘무대’에 올라 Spotlight(조명)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하나의 무대를 갖고, 그 무대에 올라온 하나의 모형에 대해서만 의식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한 번에 하나의 사고에만 주의(attention)를 기울인다.
이 내용을 이해하면 우리가 왜 깨어 있는 동안 하나의 의식만 갖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뇌가 하나의 예측 모형에만 주의를 주고 있기 때문에(무대에 하나의 모형만 올라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하나의 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우리의 예측 모형들은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무관하게 스스로 예측을 수행하고 있음을 상기하자. 우리의 깨어 있는 동안 실제 감각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비교하는 하나의 예측 모형(편의상 이것을 주(main) 모형이라 부르자)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마치 하나의 의식만 갖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현재 감각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현실 세계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 주의(attention)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감각기관의 정보와 무관하게 예측을 수행하는 모형(이것을 보조(sub) 모형이라 부르자)도 존재함을 기억하자. 이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돌아가고 있다(이해를 돕기 위해 주, 보조를 구분했지만 그것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시공간
우리의 뇌가 병렬적으로 각자의 논리를 통해 예측을 수행하고 그 중 하나의 예측 모형만 무대에 올라 올 수 있음을 이해하면, 꿈에서 시공간이 무너지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감각 기관의 정보를 반영하는 주 모델만 무대에 올라와 조명을 받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는 감각 기관의 정보를 무시하기 때문에, 주 모델만 무대에 올라올 필요가 없다.
즉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 무대 밖에 존재하던 개별 예측 모형들이 잠을 자는 동안 번갈아 무대에 올라오는 것이고, 이 모형들은 각자 자신의 맥락(context)에 대해 예측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모형은 하늘을 나는 상황을 예측하고, 다른 모델은 친구를 만나고 있고, 다른 모델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무대에 올라온 모형이 바뀔 때마다 시공간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는 동안 왜 각기 다른 모형들이 무대에 올라오는지는 잠시 뒤 설명)
마약을 하는 상황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꾸는 꿈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깨어 있을 때 통제된 무대 환경을 바탕으로 단일 예측 모형(주 모형)에만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 통제력이 약해지면 다른 예측 모형(보조 모형)들이 무대 위에 난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에 따라 현재의 감각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전혀 다른 정보가 마구 뒤섞여서 시공간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이렇게 정보가 혼재되는 상황을 환각(hallucination)이라 부른다). 올리버 색스가 마약을 한 후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친구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다.
꿈과 마약과 또 다른 예로는 치매를 들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를 몇 년 앓았기 때문에 치매를 겪는 사람의 전형적인 증상이 시공간 개념이 무너지는 것임을 알고 있다. 자신이 현재 있는 시간이나 장소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인데, 이것 역시 꿈이나 마약처럼 깨어 있는 동안 무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보조 모형들이 무대에 난입하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물론 나는 마약처럼 치매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서술은 아닐 수 있다).
학습과 훈련
우리의 뇌는 예측 모형들의 집합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학습 또는 훈련하는 것이 사실은 예측 모형의 성능(근육을 움직이는 것을 포함하여)을 높이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어떠한 분야에 대해 일반인과 전문가의 차이는 (물론 근육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예측 모형의 성능 차이에 해당한다. 특정 분야에 대해 일반이 보기에 마치 마술과도 같은 수준의 능력을 보이는 전문가들의 능력은 모두 예측 모형의 성능에 기반한다.
우리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뛰어난 성능의 예측 모형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는 동안 꿈을 꾸는 이유이다. 신체적 휴식을 위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는 뇌에서 여러 예측 모형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해서 예측 모형의 성능을 개선한다. (이것은 감각 기관을 통해 정답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self-supervised learning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창조성
창의성에 대한 이론 중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잠시 미뤄 두면(부화 단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어떠한 단서에 의해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르는(통찰 단계)를 설명하는 이론이 있다. 이것 또한 우리의 뇌가 여러 모형을 병렬 처리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어떤 문제를 생각하다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다른 문제로 주의(attention)을 돌린 경우, 해당 문제에 대한 예측 모형은 무대 뒤로 넘어가고,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동안에 해당 예측 모형은 열심히 예측을 수행한다. 감각 기관이나 의식을 통해 해당 예측 모형에게 또 다른 단서가 주어질 때, 해당 예측 모형이 해결책을 찾아내면, 해당 모형은 의식에게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그 순간 ‘Aha moment’를 맞이하게 된다.
즉 우리가 느끼는 문제 해결의 순간 또는 영감을 얻은 순간 또한 우리의 의식에 올라와 있지 않은 다른 보조 모형의 예측 결과인 것이다. 결국 세상에 공짜는 없다.
System 1/2
이러한 맥락을 따라가면 System 1/2 이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System 1은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들어가는 학습 단계이고 System 2는 자동화된 단계를 의미하며, 실제 정답(ground truth)와 비교하여 오차를 판별하고 모형을 업데이트하는 System 1이 단순히 예측만 수행하는 System 2보다 아무래도 예측 모형의 성능을 높이는데 낫지만 그만큼 비용이 크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 무대에 하나의 모형만 올라오는 것이 원칙인데(물론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일어날 때 우리는 환각을 경험한다), 특정 모형이 무대를 오래 독점하면 다른 모형들에게 기회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일정 수준 모형의 성능이 올라왔다고 판단되면, 무대에 더 자주 올라오지 않게 하고, 무대 밖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는게 에너지 절약을 포함한 여러 면에서 낫다(믿음이 가는 직원은 지시만 내린 후 나중에 결과만 확인 하는게 낫지, 과정에 일일이 개입하면 서로 피곤하다).
뇌는 네트워크다
우리의 뇌는 하나의 거대한 예측 기계가 아니라 여러 예측 모형들의 네트워크이다. 우리가 의식을 하나라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무대가 하나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뇌를 구성하는 각 예측 모형은 우리가 깨어 있는 순간에도 무대 밖에서 열심히 예측을 수행하고 있다. (무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 우리의 무대에는 여러 모형들이 한 번에 올라올 수 있고, 그 순간 우리는 시공간이 무너지는 환각(hallucination)을 경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꿈은 마약과 실제로 관계가 있다(심지어 치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