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에서 시작하여 동물 해방에 이르는 윤리 문제를 이야기 하는 책. 벤담이라는 이름을 보고 공리주의를 떠올렸지만, 공리주의와 ‘공평하라’라는 부제와는 좀 어울리지 않나 싶었는데, 실제 내용도 공리주의에 대한 내용과 우주적 관점에서의 공평함에 대한 내용으로 구분이 된다. –책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을 고려한다는 논의로 공리주의에서 공평함을 찾는데, 모두가 공평한 지점이 이익의 총합이 극대화 되는 지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논의는 사실 좀 갖다 붙인 느낌이 든다.
공리주의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대한 논의나 행복을 정량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 등이 유명한데, 이에 대해 딱히 코멘트할 거는 없어 보이고, 공평함에 대한 우주적 관점이 흥미로우니 이에 대해 몇가지 생각 정리.
동물의 이익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논의는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만한데,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므로 잡아 먹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식물은 신경계가 없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먹는게 문제가 안된다는 논의는 사실 받아 들이기 어렵다. 그렇게 따지면 유전적인 문제로 선천성 무통각증을 가진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잡아 먹어도 되나? 생명이라면 생(life)에 대한 추구가 있게 마련인데, 고통을 느끼는 것을 기준으로 식물은 먹어도 되고 동물은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거는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동물을 먹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인만큼 식물을 먹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면피성 논리는 안 하느니만 못하는게 아닐까 싶음.
사실 이런 논의를 따라가면 애초에 인간이 존재하는거 자체가 문제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사실 정말로 자연에서 인간이 없어지면 자연은 아름다운 곳이 될까 하느냐면 그건 또 아님. 인간의 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대체하는 것일 뿐. 애초에 자연의 법칙이 이상적이지 않으며 –이래서 붓다는 생이 고통이라고 강변했지– 이상적인 공간을 찾으려면 빅뱅 이전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으면 불합리한 것도 없지.
모든 논의에는 범위(range)가 있게 마련이고, 어느 수준에서 합의를 하느냐가 현실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