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허먼 멜빌의 소설. 문학에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굳이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책이 쓰여진 시대의 포경업이 현재의 정유사업과 같고1), 당시 항해를 하는게 일종의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읽게 되었음.
현대로 치자면 스타트업 탐방을 마친 저자가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과 사건을 담고 이야기의 전체를 끌고가는 굵직한 메인 이야기2) 로 구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 시대에는 아무래도 다른 컨텐츠가 없었기 때문인지, 소설의 분량이 상당한 편인데 많은 이야기가 고래 자체에 대한 이야기3) 가 많아서 이야기만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소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읽고 나니 왜 이 책이 영미 문학에서 손 꼽히는 책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앞서 이야기한 이야기 구성과 —실제 업계에 대한 디테일한 이야기 + 메인 줄거리의 조화— 기독교 안티테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4) + 이른바 미국식 유머와 언어 유희가 상당함5) 등이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되는 듯.
책의 구성과 깊이가 상당하다. 만일 내가 문학에 좀 더 관심이 있었다면 좀 더 꼼꼼하게 몇 회독을 해도 좋을만한 책이라 생각 했음.
더불어 스타벅스 창업 멤버 중 한 명이 책의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을 좋아해서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지었다던데 —스타벅과 커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책을 읽어보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추스르며 꽤나 침착하게 물러나서 선장실을 떠나려다 말고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선장님은 저를 모욕한 게 아니라 격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니 스타벅을 조심하라는 부탁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조심해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를 조심하세요, 영감님.”
1.
고래를 잡는 이유는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해서인데, 당시 고래 기름이 현대의 석유와 유사한 역할을 함. 포경 산업이 저문 이유는 포경 금지법 때문이 아니라 석유 때문이다. 석유가 고래의 구원자인 셈
2.
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를 사냥하는 이야기. 모비 딕의 오래된 번역본 이름이 백경인 것은 소설 상 고래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실제 향고래는 흰색이 없다고 하는데, 고래에 대해 그렇게 많이 조사를 한 허먼 멜빌이 그것을 몰랐을리는 없고, 눈에 띄는 고래라는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없는 색을 고른 것 같다. 어쩌면 실존하지 않는 고래라는 것이 은유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음.
3.
현대 IT 회사 이야기를 다루는데 컴퓨터 CPU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루는 이야기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수 있을 듯
4.
그 유명한 ‘나를 이스마엘로 불러달라(Call me Ishmael)’는 도입부에서 이스마엘은 성경에서 쫓겨난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불어 선장인 에이허브도 성경에 나오는 폭군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