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 열역학 제 2법칙임을 기준으로 본다면, 생명이란 에너지 확보를 최대화하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하는 존재 —달리 표현하면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존재— 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 한다.
에너지 최소화의 법칙 –대칭성(symmetric)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 함– 이 만물을 구성하는 원리로 작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 확보를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
에너지 최소화 법칙이 비단 생명이 아닌 것에서도 나타남 –대부분의 물리적 구조– 을 생각해 본다면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의 구분은 에너지 확보 최대화를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느냐 아니냐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생명이 지능(intelligence)을 가졌다고 볼 수 없기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범위’는 전체 생명의 범위보다 작을 것이다 –생명이 아닌 것에 지능을 붙이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 둘은 포함 관계는 아니라고 가정.
그렇다면 지능을 가진 생명체와 지능이 없는 생명체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역시 에너지의 관점에서 정의를 내려본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이 없는 생명이 에너지 확보의 무조건적인 최대화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능이란 단기적으로 에너지 확보가 줄어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에너지 확보를 더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 –이 논리는 에너지 소비의 최소화로 바꾸어도 동일하다.
다시 말해 지역 최적점(local optimal)에 머무르지 않고,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도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전역 최적점(global optimal)[1]을 향해 가도록 판단하는 것이 지능이라는 정의이다.
당장의 소득 활동을 하기 보다 소득을 커녕 등록금이라는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소득의 확보를 높이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바로 지능의 활동이라는 것.
지능의 결과는 –예측이므로– 항상 확률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은 경우에 대해 더 높은 지능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또한 지능은 그 물리적인 하드웨어인 뇌의 가소성(plasticity) 덕분에 학습에 의해 더 발달할 수 있다 –물리적 하드웨어인 뇌의 한계 내에서– 는 특징도 있다.
[1]: 전역 최적점(global optimal)이라는 개념은 다소 직관적인 표현인데, 엄밀히 말해 현재의 지역 최적점(local optimal) 보다 더 최적화된 지역 최적점이 있을 뿐 전역 최적점은 없다고 보는게 맞다. 마치 집합론에서 항상 더 큰 집합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전체 집합(universal set)이라는 것은 없다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 하는 것과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