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비슷하긴 하지만, 디자인 역시 생각이 8할이다. 올바른 생각을 했다면, 그것을 실체화하는 것은 그냥 시간을 들이면 되는 일일 뿐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량화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닌 반면, 일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고 정량화 할 수 있는 활동이라 대개의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거꾸로 생각하게 마련이다만.
디자이너로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며, 마지막으로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지식은 분야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늘 바뀌는 것이지만,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어느 분야에서나 통용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수명으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없어질 때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 사실상 고정적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 번만 제대로 배우면 그 뒤는 쉽다. 더불어 우리가 만드는 결과물은 결국 인간과 이 세상을 위한 것이므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한다면 그렇지 않은 때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글은 여기저기 많으니 굳이 내가 덧붙일 만한 것은 없고, 이 글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내 생각을 좀 이야기해 보겠다. 글의 주제는 단순하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4차원 시공간
물리학자들은 세상에 훨씬 많은 차원이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인지할 수 것은 3차원 공간 뿐이며, 거기에 시간 개념이 더해진 4차원 시공간이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를 4차원이라고 인식한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의 정보를 최소화 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현실의 4차원적인 정보 –입체 + 시간변화– 를 흑백논리나 –ex) 내 편이나 아니냐– 1차원 스펙트럼 –ex) 극좌에서 극우까지– 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하게 마련이다.
3차원인 지구를 2차원 지도로 옮기면 어떠한 도법으로 그려도 반드시 왜곡이 발생하듯 –차원이 하나 줄어드는데 그 차원이 들고 있던 정보를 손실 없이 변형한다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불가능한 일이다– 4차원적인 현실세계의 정보를 흑백논리나 1차원적으로 인식하면 그 변환 과정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비선형
<이전 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다뤘지만, 세상의 변화는 비선형적이다. 사람들은 현재 잘나가고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잘 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현재 어려우면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것처럼 생각하지만, 좋았다 어려웠다를 반복하는게 세상이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비순환적인 것은 영원히 안 좋을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 때문.
겨울은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추웠다 풀렸다 하는 날씨를 반복하는 과정에 점점 추워지면 그게 겨울이다. 반대로 추웠다 풀렸다 하는 날씨를 반복하는 과정에 점점 따뜻해지면 그게 봄이다. 더불어 그러한 변화에는 명확한 경계 같은 것도 없다. 변화는 늘 비선형적으로 다가온다.
층위
과학의 발전에 환원주의가 이루어낸 성과는 엄청난 것이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환원주의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하위 요소들의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하위 요소들이 서로 연관되어 상호작용할 때 상위 수준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드러난다. –이를 창발이라 한다– 온도라는 개념은 개별 입자에는 존재하지 않는 속성이고, 입자들 전체의 움직임이 어떻게 되는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상위 층위에 드러나는 새로운 질서 때문에 하위 요소에서 사용하던 법칙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상위 층위가 하위 요소들과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상위 층위는 하위 요소들에 물리적으로 기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의 육체에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성도 온전할 수 없다. 상위 층위를 이해하기 위해 하위 요소들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며,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확장하는 세계
세상은 고정된 곳이 아니다. 마치 우주가 팽창하는 것처럼 우리의 세상과 우리의 지식도 팽창한다.
위 그림에서 원 안의 영역을 우리의 세상, 우리가 아는 영역이라고 치고, 원 밖의 영역을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라고 치자. 이 상황에서 원의 테두리,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접하는 부분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식을 더 쌓아서 위 그림처럼 인류가 가진 지식의 크기가 더 커진다고 하자. 재미있는 점은 지식이 커지면 커질 수록 원의 테두리,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영역이 커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게 많아진다. –반대로 보면 아는게 없을 수록 모르는 것도 없다.
대단히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이 내용은 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큰 도약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부분에 대해 연구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 그 영역을 밝힐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러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영역이 더 커져서 우리는 모르는게 더 늘어나게 된다. –문제가 해결되면 그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비롯하는 새로운 문제가 파생된다. 자동차 교통사고는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문제인 것이다– 여하튼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지식은 더 확장된다.
결론
훌륭한 디자이너라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려면 현실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그 복잡한 현실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인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현실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복잡한 세상을 최대한 그 자체로 이해해야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다행한 점은 이러한 이해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이다. 세상을 4차원으로 인지할 수 있는 –타인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모든 과거를 관찰할 수 있는 인지 능력– 호모 사피엔스는 없다. 그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다 거기서 거기이며, 훈련을 통해 조금 나아질 수 있을 뿐이다. –뇌는 가소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