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받아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작가를 널리 알려지게 한 작품. 개인적으로 읽은 순서와 달리 이 작품이 <소년이 온다> 보다 먼저 쓰여졌는데, <소년이 온다>에서 보였던 형식이 여기서 먼저 보여서 재미있었음.
<소년이 온다>에서도 제목의 소년인 ‘동호’는 직접 다뤄지지 않고, 소설 상 여러 다른 화자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관찰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소설 전체의 주인공이지만 3편의 이야기의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해 관찰된 모습이 나타날 뿐 직접 이야기를 끌어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구성이 사실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꽤 흥미롭게 한다. 서로 다른 관찰자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그게 이렇게 이어지는 거구나’하는 부분이 묘하게 재미있었음. 처음에 상 받은 소설이라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써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소설의 첫 편만 보면 주인공이 대체 왜 저러나 싶고, 두 번째 편에서는 자극적인 성적 묘사가 이어지지만 여전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세 번째 편에서 이르러 주인공 언니의 시점과 생각을 통해 주인공의 정신이 왜 망가지게 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됨.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주인공에게 강압적이고 쾌락을 위해 주인공을 이용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언니의 이야기에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지 않나 싶었음— 결국 주인공의 정신이 망가지기 때문에, 이 소설의 이야기는 이른바 가부장적 질서를 비판하는 페미니즘 시각과도 이어진다.
책에 대해 여러 논란 —성적 묘사와 페미니즘 시각— 이 있을 수 있지만, 소설 자체로 잘 쓰여졌고, <소년이 온다> 함께 한국 문학사에 유의미한 발자국을 남겼기 때문에 —아마도 두 소설은 모두 학교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할 것이다—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 듯.